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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후기 EUROPE/독일 GERMANY

왠지모를 먹먹함이 있는, 베를린 장벽

by sossy 2022.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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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전에 맛집 부터 - 슈니첼 맛집 가기

독일에 있는 친구를 만나기위해 갔었던 베를린. 거의 2년 가까이 보지 못한 친구를 보러 가는겸 유럽여행을 하기로 한 것도 과언이 아니었다. 베를린은 바로가는 직항이 없거나 너무 비싸서 (특히나 코로나 상황) 공항 요충지인 프랑크 프루트로 이동을 했다. 프랑크 푸르트에서 하루를 머물고 다음날 바로 독일의 고속열차인 DB를 타고 베를린으로 향했다. 베를린에 도착하자 독일읭 수도답게 역에는 경찰분들이 매우 많았던 기억이 난다. 

 

베를린역까지 마중나온 친구를 만나고 서로 반가움을 뒤로한 채 배가 고파서 바로 레스토랑으로 갔다. 독일의 전통음식인 슈니첼 맛집을 찾아갔다. 베를린 동쪽에 위치한 Schneeweiss라는 곳이 었는데, 저녁 조금 늦게간 시간이었는데도 만석이었다. 예전에도 슈니첼을 먹어본 적은 있었는데, 조금 퍽퍽하고 말라 비틀어진 돈가스 느낌이었던것 같다. 하지만 이 레스토랑은 맛집답게 매우 촉촉하고 정말 맛있었다. 특히 크렌베리 소스와 함께 먹는 것이 인상깊었는데, 새콤하면서 생각보다 조화가 잘 맞아서 맛있게 먹었다. 

 

특히나 플레이팅이 고급 코스요리 레스토랑 음식과 같이 매우 예쁘게 나와서 보는데도 재미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이 매우 많았는데 역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레스토랑 이었다. 맛집을 뒤로하고 레스토랑과 가까운 베를린 장벽을 먼저 보러 가기로 했다.

 

독일의 역사를 간직한 베를린 장벽,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베를린에 왔다면 꼭 한 번쯤 구경해야할 곳이 바로 베를린 장벽, The East Side Gallery이다. 갤러리라고 불리울 만큼 다양한 예술 그림이 그려져 있어 마치 야외 갤러리를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어있던 시절, 수도였던 베를린에 긴다긴 장벽으로 넘을 수 없었던 베를린 장벽. 허물어지고 남은 장벽의 길이가 무려 1.3km라고 하니, 당시에는 도시 전체를 매워 절대 넘어갈 수 없는 분단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38선과 같은 역할을 했던 셈인데, 지금은 모두 허물어져 역사적 기념벽으로 남아있다는 점이 조금은 부러웠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언제 다시 합쳐질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실제로 현장에 가보니 조금은 마음이 먹먹해졌던 것 같다.

 

특히나 베를린 장벽은 수 많은 그래피티 벽화로 꾸며진 것으로 유명한데, 그 중 가장 유명한 벽은 바로 '형제의 키스' 라는 벽화이다. 당시 매우 센세이션 했던 역사적 장면을 화가 드미트리 브루벨이 다시 재창조해 그린 벽화로, 옛 동독 서기장과 서독 서기장이 만나 화해의 의미로 뜨겁게 키스를 나누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 다른 벽화도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확실히 이 벽화 앞에서는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벼있었다. 만약 코로나 상황이 아니었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인기가 많았을 텐데 다행히 당시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생각보다는 쉽게 형제의 키스 장벽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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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의 역사

베를린 장벽에서 가장 유명한 이 '형제의 키스'라는 벽화는 브레즈네프와 호네커가 동독이 건국된지 30년인 1979년에 만들어진 레기스 보수의 사진 이었다.  원래는 동독 지도자들끼리 만난 것이었는데, 이 두 사람은 진심어린 키스를 나눔으로써 더욱 굳건한 믿음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그 중 화가 드미트리 브루벨은 옛소련의 서기장이었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와 옛동독 서기장이었던 에리히 호네커가 입맞춤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바꾸어 그려넣은 것이다. 우리나라 현재로 따지면 윤석열 대통령과 김정일이 만나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그려 넣은 것인데 이 역시 자유롭게 그림으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매우 새로웠고, 예술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베를린 장벽이 지어진 이유는 당시 동독과 서독이 완전히 분리된 이후에도 상대적으로 어렵게 살고 있었던 동독 사람들이 서독으로 몰래 넘어가는 일이 많아지자 40km에 달하는 굉장히 긴 담장을 높게 쌓아올렸다. 때문에 브란덴부르크문을 통해서만 왕래가 가능하게 되었는데, 1989년 허물어진 이후 현재는 이를 중심으로 약간의 부분만 기념물로 남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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